큐 잡은 2000년대생… ‘당구 女神’ 세대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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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 잡은 2000년대생… ‘당구 女神’ 세대 교체
요즘 당구 팬들 사이에서 ‘여신(女神)’으로 통하는 정수빈(26)은 ‘숙대(숙명여대) 나온 여자’다. 통계학을 전공하던 평범한 여대생으로 당구엔 문외한이었다. 친구 대신 ‘대타’로 며칠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당구를 직접 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21년 프로 당구 선수인 남자 친구 덕분에 재미 삼아 처음으로 큐를 잡았는데,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다. 정수빈은 학업을 병행하면서 하루에 8시간씩 맹훈련했고, 1년 반 만인 2022-2023시즌 LPBA(여자 프로당구)에 데뷔했다.
정수빈은 데뷔 초엔 늘씬한 키(170㎝)와 수려한 외모로 눈길을 끌었지만, 최근 들어 기량도 물이 올랐다. LPBA 최강자로 꼽히는 ‘당구 여제’ 김가영(42)을 연달아 꺾으며 천적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직 프로 우승은 신고하지 못했지만, 이닝당 득점(에버리지)에서 김가영과 스롱 피아비(캄보디아)에 이어 3위(1.015)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시즌 개막을 앞두고 팀 리그 NH농협카드에도 입단했다. 대학 시절 금융권 취업을 목표로 했는데, 당구로 꿈을 이룬 셈이다.
당구계가 정수빈을 비롯한 새로운 ‘이대녀(20대 여성) 스타’의 출현으로 들썩이고 있다. ‘흑거미’ 자넷리(54)를 시작으로 김가영·차유람(38) 등이 1세대 당구 스타였다면, 한지은(24)·정보윤(24)·박정현(21) 등 2000년을 전후해 태어난 젊은 선수들이 LPBA 주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당구 실력뿐만 아니라 개성 있는 외모, SNS를 활용한 소통 등으로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당구에 관심을 둔 2030 세대가 늘면서 선수층도 두터워지고 있다. PBA(프로당구협회)에 따르면, 2025-2026시즌 여자 리그에서 20~30대 선수는 87명으로 출범 원년인 2019년(36명)보다 배 이상 늘었다. LPBA 전체 등록 선수가 142명이니 약 3분의 2는 ‘MZ세대’인 셈이다. 이 중엔 정수빈처럼 뒤늦게 당구를 접하고 짧게는 1년 만에 전문 선수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자 당구는 아직 남자부에 비해 선수간 기량 격차가 크지 않아, 체계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어도 프로 진입이 가능하다.
2001년생 정보윤은 당구를 전혀 모르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처음 당구를 정식으로 배웠다고 한다. 이후 전국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컵을 차지하더니 2022년 LPBA에 입성했다. 지난 시즌 처음으로 개인전 결승에 올라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김다희(27)는 중학교 때까지 마라톤 선수로 뛰었다. 스물한 살에 당구를 처음 접하고 4~5년 동안 동호인 활동을 하다가 2022-2023 시즌에 프로에 데뷔했다.
어릴 때 당구를 처음 접하고 체계적으로 성장한 선수들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초등학생 때 당구를 시작한 한지은은 18세인 2019년 미국 뉴욕에서 당시 여자 당구 세계 최강인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네덜란드)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 ‘당구 천재’로 불렸다. 국내 아마추어 1위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당구에만 열중해 프로에 입성했다. 올해 프로에 데뷔한 박정현도 10대 시절 김가영에게서 포켓볼을 배우며 당구에 입문했고, 3쿠션으로 전향했다. 프로 첫 시즌에 김가영·스롱에 이어 개인전 다승 3위(18승)를 달리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20대 선수의 기수라 할 수 있는 이미래(29) 역시 열세 살 때 당구를 시작한 뒤 한국체대에 특기생으로 입학까지 한 ‘당구 엘리트’다.
국내 프로 당구는 20대 여성 스타들을 앞세워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PBA는 상금 규모와 팀 리그 체제 등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프로 3쿠션 리그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이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집결하는 ‘당구계의 메이저리그’가 된 것이다. 그동안 리그 규모나 관심도가 남자부에 치중된 편이었지만, 최근엔 LPBA도 젊은 스타들의 부상으로 눈에 띄게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해부터 LPBA 한 대회에 걸린 총상금이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늘어난 영향도 있다. PBA 관계자는 “프로 당구 중계 시청률이 꾸준히 상승 추세를 보이는 것도 여자 선수들의 인기몰이 덕분”이라고 했다.
